
유독 몸이 무겁고 아침에 눈을 뜨기가 버거운 날, 우리는 흔히 "나이 탓인가?" 혹은 "단순한 피로 누적인가?"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갑상선 수치 요주의'라는 낯선 문구를 마주하게 되면 그제야 목 안쪽을 한번 더듬어 보게 됩니다.
우리 목의 한가운데, 아주 작은 크기로 자리 잡고 있지만 온몸의 에너지를 관장하고 뼈의 강도까지 조절하는 숨은 거인들이 있습니다. 바로 갑상선과 부갑상선입니다. 이름이 비슷해 마치 형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이 둘은 사는 곳만 이웃일 뿐 하는 일은 전혀 다른 '남남'이자 각자의 영역에서 생명을 지키는 독립적인 전문가들입니다. 오늘은 작지만 우리 몸의 거대한 균형을 이끄는 이 두 기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내 몸의 속도를 결정하는 나비 모양의 엔진, 갑상선
거울 앞에 서서 목을 살짝 뒤로 젖혔을 때, 식도 앞쪽에 자리한 나비 모양의 기관이 바로 갑상선입니다. 무게는 고작 20g 남짓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우리 몸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엔진 속도를 조절하는 핵심 통제실과 같습니다. 갑상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은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을 에너지로 바꾸는 신진대사의 속도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마치 보일러의 온도 조절기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비슷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과하게 분비되면 우리 몸은 불필요하게 과열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심장이 쿵쿵 뛰고, 땀이 나며,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는 등 엔진이 폭주하는 상태가 됩니다. 반대로 호르몬이 부족하면 몸은 차갑게 식어갑니다. 물 먹은 솜처럼 무기력해지고, 손발이 차가워지며, 적게 먹어도 붓고 살이 찌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갑상선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뇌 속에 있는 시상하부와 뇌하수체라는 상위 지휘자의 명령을 받아, 혈액 속 호르몬 농도를 아주 정밀하게 조절하며 매 순간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우리가 느끼는 활력은 바로 이 나비의 날갯짓이 만들어내는 건강한 바람인 셈입니다.
뼈와 신경을 지키는 헌신적인 집사, 부갑상선
갑상선의 뒷면을 살짝 들여다보면 좁쌀만 한 크기의 기관 네 개가 숨어 있습니다. 이름에 '부(副)'자가 붙어 있어 갑상선의 보조 기관쯤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부갑상선은 전혀 다른 임무를 띤 독자적인 기관입니다. 이곳은 우리 몸의 '칼슘 농도'를 24시간 감시하고 조절하는 헌신적인 집사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는 흔히 칼슘을 뼈의 재료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칼슘은 심장이 뛰고, 근육이 움직이며, 뇌의 신경 신호가 전달되는 모든 과정에 쓰이는 필수 연료입니다. 혈액 속 칼슘 농도가 아주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생명 유지 시스템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때 부갑상선 호르몬이 등장합니다.
만약 혈액 내 칼슘이 부족해지면 부갑상선은 비상벨을 울립니다. 그리고 뼈에 저장된 칼슘을 녹여 혈액으로 가져오거나, 소변으로 배출될 칼슘을 신장에서 다시 흡수하도록 명령합니다. 뼈의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심장과 뇌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노력인 것입니다. 반대로 부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생겨 호르몬이 과다해지면, 뼈 속 칼슘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골다공증이 생기거나 요로 결석 같은 고통스러운 질환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이름은 비슷해도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이웃사촌
많은 분이 갑상선과 부갑상선을 혼동하여, 갑상선에 좋은 음식이 부갑상선에도 좋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시스템으로 움직입니다. 갑상선은 요오드를 재료로 하여 '에너지 대사'라는 언어를 쓰고, 부갑상선은 비타민 D와 협력하여 '칼슘 균형'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사는 곳이 같다고 해서 역할까지 같은 것은 아닌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기관이 보내는 신호가 때로는 너무나 미미하거나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이유 없는 피로감, 우울증, 잦은 근육 경련이나 소화 불량 등이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이 작은 호르몬 기관들이 보내는 구조 요청일 수 있습니다. 특히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 여성의 경우, 갑상선 질환의 발병률이 남성보다 월등히 높기에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내 몸의 컨디션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눈에 보이는 증상만 쫓기보다 목 안쪽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호르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작지만 강력한 이 두 지휘자의 균형이 맞춰질 때, 비로소 우리 몸은 진정한 건강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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