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키가 크고 뼈가 튼튼해지려면 우유를 물처럼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학교 급식에는 늘 하얀 우유가 빠지지 않았고,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문구는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우리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이 건강을 위해, 혹은 다이어트를 위해 매일 아침 우유 한 잔을 의무감처럼 마시곤 합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 믿음에 대해, 이제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입니다. 광고와 통념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걷어내고, 우리 몸의 생리적인 반응과 자연의 섭리를 통해 우유라는 식품의 진짜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과연 우유는 우리 몸을 살리는 완벽한 구원자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몰랐던 불편한 진실을 품고 있을까요?

뼈를 위한 선택이 뼈를 약하게 만드는 '칼슘의 역설'

우유를 마시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칼슘'입니다. 뼈와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이 풍부하니, 우유를 많이 마시면 골다공증이 예방될 것이라는 논리는 매우 직관적이고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우유는 동물성 단백질이 매우 풍부한 식품입니다. 우리가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면 대사 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생성되어 체액이 산성으로 기울게 됩니다.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해 혈액의 pH(산성도)를 약알칼리성으로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강력한 항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산성화된 몸을 중화시키기 위해 가장 손쉽게 끌어다 쓰는 알칼리성 미네랄이 바로 뼈 속에 저장된 '칼슘'입니다.

즉,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마신 우유가 오히려 몸을 산성화시키고,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뼈에서 칼슘을 빼내 소변으로 배출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유 소비량이 높은 낙농 선진국에서 오히려 골다공증 환자가 더 많이 발생하는 '칼슘의 역설'입니다. 뼈를 지키려던 노력이 도리어 뼈의 저장고를 비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송아지를 위한 젖, 그리고 인간의 소화계

자연계의 질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동물도 어른이 된 후에 젖을 먹지 않으며, 더구나 다른 종(種)의 젖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합니다. 우유는 본래 갓 태어난 송아지가 단기간에 400kg이 넘는 거대한 소로 성장하기 위해 최적화된, 성장 호르몬과 지방이 농축된 생명수입니다. 인간의 성장 속도나 소화 기관과는 근본적으로 설계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성인이 우유를 마신 후 속이 더부룩하거나 가스가 차고, 설사를 하는 '유당불내증'을 겪습니다. 이는 질병이라기보다, 젖을 뗄 시기가 지나면 체내에서 유당분해효소(락타아제)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인체의 정상적인 반응에 가깝습니다. 또한 우유 속의 주단백질인 '카제인'은 위장에서 엉겨 붙어 소화가 매우 까다롭고, 장 점막을 자극하여 염증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우유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훌륭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을 분해하고 처리하기 위해 우리 소화 기관이 감당해야 할 에너지 소모와 부담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소화되지 않은 단백질 찌꺼기는 독소가 되어 몸을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완전식품'이라는 왕관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진정한 건강을 선물하는 '완전식품'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가공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채소와 과일이야말로 그 자격에 부합한다고 말합니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에는 70% 이상의 수분이 함유되어 있어 영양소를 세포 구석구석으로 빠르게 운반하고, 노폐물을 씻어내는 정화 작용을 탁월하게 수행합니다. 또한 이들은 대표적인 알칼리성 식품으로서, 산성화된 우리 몸을 중화시키고 뼈 속의 칼슘을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억지로 소화 효소를 낭비하지 않아도 스스로 쉽게 분해되어 에너지원으로 즉각 활용될 수 있는 살아있는 음식들입니다.

우유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유만이 유일한 칼슘 공급원이라거나 반드시 섭취해야 할 완전식품이라는 맹신에서는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광고가 만들어낸 이미지 속에 갇혀,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귀를 닫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유를 마실 때마다 속이 불편했다면, 그것은 당신의 몸이 "이것은 내게 맞지 않다"라고 보내는 정직한 거부 의사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건강은 외부의 정보가 아닌,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부터는 습관적으로 우유 팩을 집어 들기 전에, 내 몸이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지혜로운 선택을 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