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이 무엇인지 읽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 한마디가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하는 데 가장 적절한 문장일지도 모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이며, 언론인이자 소설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단 하나의 분야에 정체되지 않았습니다. 텍스트의 해석에서부터 신화와 역사, 미디어 이론, 현대 사회의 언어까지… 에코는 이 모든 것을 연결하며 ‘지식을 해석하는 방법’ 자체를 사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단순한 앎이 아닌, ‘앎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를 고민한 구루. 바로 에코입니다.
해석이란, 하나의 방식이 아닌 수천 가지의 가능성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관은 철저하게 ‘기호’의 세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모든 사물과 사건, 말과 행동이 하나의 ‘기호’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호는 고정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경험과 관점에 따라 끊임없이 열리는 문처럼 작동한다고 말했죠.
이러한 사유는 《열린 작품》이라는 저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에코는 예술작품, 문학작품은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의 여백’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창작자는 문을 만들고, 독자는 그 문을 여는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합니다. 독자는 수동적 수신자가 아니라, 의미를 함께 창조하는 공동 제작자입니다.
이런 태도는 단지 예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텍스트—정치, 종교, 미디어, 뉴스, 일상 언어까지—가 해석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해석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장미의 이름>, 세계관이 숨 쉬는 소설
움베르토 에코의 대표작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단순한 추리물로 읽는다면 에코가 진짜 하려던 말을 놓치게 됩니다.
소설은 기독교 신학의 이단 논쟁, 고전 철학의 해석 차이, 권력과 지식의 관계, 도서관의 은유 등을 섬세하게 엮어내며, ‘누가 진리를 규정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에코는 독자가 그 미로 같은 서사를 헤쳐나가며 스스로 해석의 주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에게 소설은 하나의 실험실이었습니다. 철학과 문학이 만나고, 역사와 현재가 충돌하며, 독자가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장소’를 만들어내는 공간이었죠. 《장미의 이름》은 바로 그 실험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해석의 자유와 해석의 윤리 사이
흥미로운 점은, 에코가 해석의 자유를 누구보다 옹호하면서도 무한한 해석이 곧 정당한 해석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텍스트는 열려 있지만, 모든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해석은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윤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이를 “해석의 책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뉴스 한 줄을 읽고, 타인의 말을 듣고, 책을 넘기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해석이 만약 악의적으로 왜곡되거나, 무지를 기반으로 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사회적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에코는 ‘읽는 법’을 가르치는 사상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읽기의 마지막 문턱에는 언제나 윤리적 성찰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에코를 읽는다는 것
디지털 미디어가 넘쳐나고, 정보가 사실과 가짜를 넘나드는 이 시대에 우리는 에코의 시선이 더욱 절실해진 것을 느낍니다. 그가 남긴 텍스트들은 단지 인문학적 유산이 아니라,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지적 도구입니다.
에코는 말했습니다.
“책은 독자가 올 때까지 잠들어 있다. 독자가 그것을 열어야만 살아난다.”
그의 책이 지금 다시 깨어나야 할 시간입니다. 단지 그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방식으로 세상을 읽는 태도를 다시 배우는 것이야말로, 움베르토 에코를 진정으로 만나는 길일 것입니다.
움베르토 에코

그는 문학과 철학, 기호학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넘나든, 지식의 다중우주를 여행한 사유의 연금술사였습니다.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중세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지적 여정을 시작했고, 생애 마지막까지 ‘세상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의 저서와 강의, 대중적 발언들은 언제나 단 하나의 질문으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질문은 곧,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상징을 해석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에코에게 있어 인간이란 ‘생각하는 존재’ 이전에, ‘읽는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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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것이 과연 ‘진실’ 그 자체일까요? 여기, 20세기가 낳은 가장 지적인 거인 중 한 명은 우리에게 다소 충격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무엇인지 ‘읽는’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 한 문장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소설가, 철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를 관통하는 핵심입니다. 그는 단순히 책상 앞에 앉은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중세의 신학부터 현대의 매스미디어, 007 시리즈와 같은 대중문화까지 섭렵하며 모든 지식의 경계를 허물었던 ‘지식의 유목민’이었습니다.
단순한 앎을 넘어 ‘앎이 어떻게 조작되고 구성되는가’를 평생 탐구했던 구루, 움베르토 에코. 그가 남긴 지적 유산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을까요?
1. 텍스트는 게으른 기계다: 독자가 완성하는 ‘열린 작품’의 세계
움베르토 에코의 세계관에서 세상 모든 것은 하나의 ‘기호(Sign)’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거리의 표지판, 누군가의 옷차림, 심지어 침묵까지도 해석을 기다리는 기호입니다.
그의 초기 명저 《열린 작품》에서 에코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펼칩니다. **“텍스트는 독자가 자신의 몫을 다해주길 바라는 게으른 기계”**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예술관이 작가가 정해둔 정답을 독자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면, 에코는 이를 전복시킵니다. 작가는 문을 만들 뿐이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의미를 채우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독자는 단순한 수신자가 아닙니다. 작품의 빈틈(여백)을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으로 메우며 의미를 함께 창조하는 ‘공동 제작자’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한 ‘해석의 즐거움’이자 현대 예술이 갖는 역동성입니다. 에코에게 있어 세상은 고정된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해석하는 주체에 따라 수천 가지 모습으로 변모하는 가능성의 숲과도 같습니다.
2. 《장미의 이름》: 진리의 미로에서 던지는 위험한 질문
대중에게 에코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것은 단연 소설 《장미의 이름》입니다. 중세 수도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소설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단순히 ‘중세판 셜록 홈즈’로만 읽기에는 그 깊이가 너무나 방대합니다.
에코는 이 소설을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증명하는 거대한 실험실로 삼았습니다. 소설 속 수도원의 도서관은 ‘지식의 미로’를 상징합니다. 윌리엄 수사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곧 우리가 파편화된 단서(기호)들을 조합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은유합니다.
여기서 에코가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누가 진리를 소유하고 통제하는가?” 소설 속에서 웃음을 금기시하고 특정 지식을 은폐하려는 권력은, 단 하나의 절대적 진리만을 강요하는 독단적 태도를 비판합니다. 에코는 소설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미로를 헤매게 만들며, 맹신과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성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역설합니다.
3. 무한한 해석과 해석의 윤리: 가짜 뉴스의 시대에 필요한 지혜
에코는 ‘열린 해석’을 주창했지만, 동시에 “모든 해석이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지점이 바로 정보의 홍수와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에코의 사상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이를 ‘해석의 한계’ 혹은 **‘해석의 윤리’**라고 불렀습니다. 텍스트는 열려 있지만, 텍스트가 가진 내적 논리를 무시한 채 입맛대로 왜곡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누구나 발언권을 가집니다. 하지만 에코는 근거 없는 음모론과 무지가 사실인 양 둔갑하는 현상을 깊이 우려했습니다. 우리가 뉴스 한 줄, 게시글 하나를 읽을 때에도 ‘비판적 읽기’라는 필터가 필요합니다. 악의적인 왜곡과 건전한 해석을 구분해내는 능력, 그것이 에코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숙제이자 ‘지식인의 책임’입니다.
마치며: 세상을 읽는 새로운 눈을 뜨다
움베르토 에코는 2016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통찰은 여전히 살아 숨 쉽니다. 그는 평생을 통해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 이전에 ‘읽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책은 독자가 올 때까지 잠들어 있다. 독자가 그것을 펼쳐야만 비로소 살아난다.”
지금 당신의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라는 텍스트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겉으로 드러난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의 의미를 읽어내려는 시도야말로 에코를 만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지식의 다중우주를 여행하는 나침반을 쥐어준, 영원한 사유의 연금술사입니다.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 장미의 이름, 인문학, 서양철학, 미디어 리터러시, 열린 작품, 해석학, 이탈리아 문학, 지성인